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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봄맞이 하다.

좋은날행복한날 2025. 4. 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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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에 위치한 백양사를 참배합니다.
봄이 되니 벗꽃과 나무 새싹들이 손을 내밀듯 반깁니다.

 

백양사는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이 창건하여 백암산 백양사라고 하였으며, 고려 명종 대 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고 개칭하였고, 1350년(고려 충정왕 2) 각진국사 복구가 3창하였습니다.

 

그 후 1786년(정조 10) 환성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 1) 도암이 중건하였으며, 1917년 만암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여환, 중연, 복구, 도암, 만암과 같이 백양사를 창건·중창한 인물들도 주요 고승으로 필히 간주되어야 하겠습니다.

 

입구에 있는 쌍계류가 보이죠

쌍계루는 1351년 각진국사가 처음으로 창건하였습니다.

 

이때 누각 명칭은 “橋樓”라 하였으나, 이후 1370년 청수스님이 중창하면서 圃隱 鄭夢周에게 기문을 부탁하여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로 “雙溪樓”라 하였습니다.

 

쌍계루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백암산 내 명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유·불교를 막론하고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짓거나 글을 남겼습니다. 쌍계루 내 현판에 적힌 많은 시문들은 조선시대 이 누각의 명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특히 쌍계루에 관하여 포은 정몽주 이외에도 목은 이색, 삼봉 정도전이 기문을 남겼으며, 면앙정 송순, 노사 기정진, 최익현, 서옹스님 등이 남긴 시문이 현판으로 전하였습니다.


쌍계루는 여러 차례에 걸친 사찰 중건 시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백양사가 피해를 입었을 때 함께 소실되었습니다. 현재의 쌍계루는 1986년에 건립된 것입니다.

백양사 입구에 있는 저수지 입니다.
통상 큰 절은 계곡을 끼고 있지만 백양사는 둘다 갖춰 물속에 비치는 봄풍경도 참좋네요.

건너편에는 카페도 있어 쉼에는 참좋은 곳입니다.

쌍계류를 지나 백양사에 들어서는 다리입니다.

고불총림백양사 입구입니다.

안에는 무서운 사천왕이 지키주고 있습니다.

 

불교용품을 파는 곳으로 보입니다.

좌측이 해우소 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깨끗하고 청결하여 좋았습니다.

 

우선, 다리를 건너 오른쪽 계곡쪽으로 해서 청량원을 먼저 갔습니다.

공사중이네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청량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목련이 피여 있고 만물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고 계곡물도 맑고 투명합니다.

한자는 청량원 무선스님이 직접 쓴 글씨라 하네요.

산 꼭데기 백양사 바위가 보이시죠. 참 웅장하고 영험스럽고 불심이 절로 나게 합니다.

천하제일 청량원이라고 하네요.

 

무선스님은 안계시고 법당을 차근차근 둘러 봅니다.

왼쪽 참사람 찻집으로 보입니다. 

위쪽에 산신각이 옛집에 모셔져 있네요

청량원 정면 모습입니다.

뒤쪽으로 가는 가람들입니다,

무선스님의 인터뷰를 액자로 만들었네요

청량원으로 가는 다리위에서 아래로 위로 찍은 사진입니다, 물이 많지는 않지만 생명을 살리는 고마움이 앞섭니다.

 

 

 

만세루인데 우화루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백양사 대웅전 입니다.

대웅전은 1917년 만암 대종사가 백양사를 5창할 당시 건립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전통 건축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법당이며,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다포집입니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으로 쌓아 조성하였고, 초석은 자연석입니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공포는 내 3출목, 외 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와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퇴칸에는 용 모양의 퇴량을 걸쳤습니다. 지붕 네 모서리에는 활주가 설치되었습니다. 한편 창호는 전면에 4분합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과 후면 어칸에는 2분합 띠살문을 달았습니다.

 

건물 내에는 석가모니와 문수·보현 삼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건립되어, 조선후기 다포 양식이 퇴화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첨차살미의 최상단은 예리한 삼각형 모양에서 익공계로 변화하였으며, 쇠서도 매우 섬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후기 사찰 건물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경향으로서, 전면 기둥 간격이 모두 같은 것은 이 건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앞에 각종 불교 안내문 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 안남았으인지 대웅전 마당에는 오색연등을 준비해 놓았네요

팔층석탑, 불사리탑이 보이시죠.

탑은 대웅전 뒤뜰에 있으며, 192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탑은 八正道를 상징하기 위하여 8층으로 조성하였으며, 탑 내에는 근대 불교계 지도자이자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었던 龍城스님이 간직하고 있던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기단부는 3중이며, 최상층 기단은 원기둥 4개를 세워 탑신부를 받치도록 하였습니다. 탑신석에는 우주를 비롯한 별도의 조각이 없으며, 옥개석은 옥개받침이 얕고 전체적으로 납작한 형태입니다. 상륜부는 보주형입니다. 이 탑의 뒤편에는 만암스님이 비문을 쓴 사리탑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탑 정면에는 팔정도의 각 단어가 새겨진 석주가 4주씩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백양사 산중턱에 암자가 있어 줌하여 찍었는데 함 가보고 싶었으나 늦은 시간이라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극락보전 입니다.

극락보전은 대웅전 남서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574년(선조 7) 한응(또는 환응)스님이 조성하였다고 전하지만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極樂殿佛糧禊序」에는 문정황후가 향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16세기 후반에 처음 조성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또한 그 조성에 왕실의 지원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건물은 1917년 만암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재건되었습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며, 좌향은 동향입니다.

낮은 석조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웠으며,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렸습니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인 다포양식이며, 架構는 2고주 7량이다. 천정은 우물천정이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습니다. 문은 정면 가운데 칸에 빗살 3분합문을, 양 옆칸에 ‘井’자살 3분합문을 달았습니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를 한 절충식 건물입니다.


극락보전 내에는 장성 백양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는 1775년 작 아미타회상도는 극락보전 후불화였습니다.
현재는 1995년에 새롭게 조성된 후불화가 전각 내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줌하여 봄을 맞이하는 백양산 바위를 크로접 했습니다.

백양사 고불매, 매화나무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네요, 

연못도 만들어 놓았네요

저녁 공양시간이라 염치 불구하고 공양간을 향했습니다.

길을 따라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17시30분경 갔는데 공양을 끝내고 반찬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행자분이 친절하게 다시 반찬과 수박을 꺼내 많이 드시라고 인사하여 너무 고마웠습니다.

밥도 맛있고 국은 배추 된장국인데 담백하고 깔끔하게 잘 나왔습니다.

두그릇 국을 먹었네요.

 

행자님이 수박을 가져가라고 비닐까지 내어주어 집으로 갈때 차안에서도 먹었습니다.

계곡쪽 새파란 잎들이 태어나고 있네요

여기는 템플스테이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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